그건 총대주 대도무적 마상도 마찬가지였다.

무극문 출신의 그는 풍연초와 탁고명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유명 무관의 다른 수하들보다 그 둘이 더 믿음직해서다.

지금도 다른 사람들은 적의 숫자에 위축된 얼굴인데, 풍가와 탁가는 담담했다.

‘과연 소문대로구나. 전문 살수들을 도륙했다더니…….’

낭인들이 거칠다고 하지만 실전에서 빛을 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저 두 사람의 합류는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었다.

방주 금동신이 총대주 마상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마상이 아홉 개의 고리가 덜렁거리는 거대한 구환도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갈 대협! 날도 추운데 굳이 피를 봐야겠소? 진안야시는 금선상방에 양보하기로 합시다. 지금까지 우리도 많이 양보하지 않았소.”

해원상방 함월대 대주 갈홍이 냉소를 날렸다.

“흥!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 대협이야말로 수하들 몸 상하게 하지 말고 물러가시오! 진안야시는 우리가 먼저 진출했는데 왜 뒤늦게 나타나 욕심을 부리오?”

“푸헐! 양보하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시오? 금선상방이 진안야시를 개발한 걸 모르는 사람이 없거늘.”

“뭐요? 흰소리 그만하고 그냥 싸웁시다. 어차피 그러려고 온 거 아니오?”

머릿수에서 우위인 갈홍 대주가 당차게 나갔다.

해원상방에는 총대주가 없지만 갈홍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이도 가장 많은 데다가 무위는 물론 주변의 신망까지 골고루 얻고 있어서다.

이윽고 상암 대주와 연설주 대주가 갈홍의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마상이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혼자서 저 셋에게 치고 들어갈 수가 없으니 함께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마상의 눈이 두 명의 대주를 지나 풍연초와 탁고명에 이르러 멈췄다.

마상은 즉시 두 사람에게 눈짓을 보냈다.

싸우기도 전에 기가 눌린 대주들보다 저 두 사람이 더 믿음직했다.

‘조만간 대주들이 바뀔지도 모르겠군.’

스타베팅 생각하는 동안 풍연초와 탁고명이 마상의 옆에 나란히 섰다.

일촉즉발의 순간.

연설주가 먼저 마상을 향해 걸어갔다.

풍연초와 탁고명을 피하고 싶은 그녀가 먼저 상대를 정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갈홍이 풍연초, 상암이 탁고명의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황이 마음에 드는지 마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은근히 대장전(大將戰)을 유도했는데 상대가 생각 없이 따라오니 그럴 만도 하다.

수적인 열세에서 아군의 사기를 올리기에는 대장전만 한 게 없다. 물론 대장전을 통해 적의 고수를 하나라도 줄이는 것은 덤이다.

곧이어 마상의 구환도와 연설주의 검이 맞부딪쳤다.

치릉, 치릉, 차차창. 챙. 채앵.

구환도의 아홉 개 고리가 만들어 내는 소음이 멀리까지 울렸다.

고수일수록 오감이 발달한다.

연설주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치릉치릉’ 대는 소리가 신경 쓰여 속에서 자꾸 욕지기가 올라왔다.

그건 평정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때 연설주의 귓가에 갑자기 ‘와아!’ 하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금선상방 무사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환호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벌써 싸움이 끝났다고 갈홍과 상암은 자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인데?

연설주는 구환도를 튕겨 내고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헉! 뭐지?’

갈홍과 상암이 어깨에서 피를 흘리며 멍하니 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분하다기보다는 뭔가에라서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